‘玉의 民族(옥의 민족)’과 전라도 천년사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이연수 교수

광주문화방송에서 TV PD 로 재직하던 2013년 ‘玉의 民族(옥의 민족)’이라는 5부작 대하 다큐멘터리를 기획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작 지원을 신청한 적이 있다. 당시 전남도립대학교 정건재 교수와 밤세워 준비한 기획서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문화재 발굴팀이 1994년부터 紅山지역(요녕성 赤峰시 인근)을 발굴하였는데 세상을 깜짝 놀랄만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홍산(하가점 문화)유물은 놀랍게도 중국의 황하문명의 것보다 최소 1천년 앞선 기원전 4천년에서 5천년 것이었다. 세계문명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출토된 유물들은 한민족 고유의 빗살무늬 토기를 비롯하여 고조선 청동기 문화의 특징인 비파형동검의 원형이 출토되었다. 아울러 여러 옥제품과 더불어 옥으로 만든 여신상이 출토 되었다. 다큐멘터리 기획서 ‘玉의 民族’에서는 홍산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의 주체가 동아시아의 동이족(東夷族), 즉 현재의 우리 민족이고, 동이의 문화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밝히는 프로그램이었다. 홍산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가 만주지방과 한반도에서 오랫동안(기원전 6000년쯤부터 2000년쯤까지) 유행했다는 사실은 적어도 두 지역이 동일한 문화영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옥으로 만든 비파형검도 출토됐는데, 비파형 청동검은 고조선 문명권을 나타내는 지표 유물이다. 홍산 유적지 인근(적봉시)에는 환웅이 신시를 열었다는 아사달이 있어 단군왕검의 고조선이 부근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지금도 조양시(朝陽市) 인근에서는 고조선 유물과 함께 고구려성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한민족(동이족) 고유의 홍산 문명이야 말로 동아시아 문명의 시원(始源)이었던 것이다.

한민족의 시원을 밝혀주는 엄청난 유적과 유물이 발굴됐지만 발굴이후 중국은 철저한 보도통제와 비공개로 일관했고, 지금은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역사 유물 중의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한사군의 한반도 설치 주장을 내세워 평양 이북의 땅은 중국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월 25일 남도일보 주관으로 ‘전라도 천년사’ 배포를 앞두고 전라도 정사(正史)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토론의 핵심 내용은 두가지라고 본다. 첫째는 우리 민족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고려의 강역은 어디까지인가? 우리 민족의 주 활동무대와 근거지는 어디인가? 즉 동이족, 예족, 맥족의 활동 강역은 어디인가? 둘째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라는 지명이 한반도에 존재하는가? 이다. 이 두가지 역사 논점에 대하여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본다. 먼저 전한 시대 무제가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을 무너뜨리고 설치했다는 한사군(낙랑, 임둔, 현도, 진번)의 위치이다.

먼저 한사군이 왜 설치되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한나라를 끓임없이 괴롭힌 북방민족은 흉노였다. 흉노의 침공을 막을 목적으로 한은 군·현을 설치했다. 당연히 흉노와 접경지역인 지금의 하북성 북부, 요녕성 서부일 수 밖에 없다. 후한서에는 “낙랑군은 옛 (고)조선국인데, 요동에 있다(在遼東)”라고 말했다. ‘대명일통지’나 ‘독사방여기요’ 같은 중국 지리지들은 낙랑군 조선현을 지금의 허베이(河北)성 루룽(盧龍)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낙랑군이 허베이성에 있었다는 뜻이다.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는 중국 사료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 주류강단사학계는 낙랑군은 평양 근처에 있었고 나머지 진번, 임둔, 현도군도 모조리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초중등교과서에 게재하고 있다.

심지어는 북한 역사학자들이 평양에서 발굴한 고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한 낙랑국의 유적과 유물을 한식(漢式) 낙랑군 유적 유물이라고 왜곡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는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임나에서 나오는 지명의 한반도 남부 비정이다. ‘전라도 천년사’에서는 기문-남원, 반파-장수, 침미다례-강진 해남으로 비정한다. 음이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이다. 일본서기의 기록을 우리 지역과 연계하면 우리 전라도는 200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역사왜곡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일본의 고대사를 기록한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일본에서 찾지 않고 왜 한반도 남부에서 찾는지, 한사군을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지 그 이유는 일제 강점기 출판된 식민사관으로 해석된 조선사 편수회의 지침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때 조선총독부가 조선사 편찬을 위해 세운 내부 기본방침은 조선의 역사를 늦출 것, 조선의 강역은 모두 압록강, 두만강 이남으로 할 것, 조선의 북쪽은 한사군의 지배를 받고 남쪽은 임나일본부 지배를 받은 것으로 할 것, 조선의 역사는 출발부터 외세의 지배를 받았으며 역사발전이 정체되었다는 이른바 타율성과 정체성을 강조할 것 등이다. 이 원칙은 식민사관을 따르는 현재의 강단사학자들에게 금과옥조처럼 지켜지고 있다.

‘전라도 천년사’는 전라도민들에게 스스로 긍지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인데 식민사관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책을 일단 출판하고 보자고 한다면 시민단체나 전라도민들이 수긍할 수 있을까?